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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타기, 결정할 수 있는 것

사람들은 흔히들 자기 인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내 인생에서 온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나는 어떤 외모로, 어떤 강점을 가지고, 어떤 약점을 가지고 태어날 지 결정할 수 없었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날 지, 어떤 친구들을 만날 지, 어떤 사랑을 할 지는 내가 결정했다기보다 그저 나에게 다가온 일들이었다. 잠들기 전 가만히 눈을 감고 오늘 일어난 일들 중 내가 결정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생각해 볼 일이다.
바바리안 데이즈를 읽었다. 2016년 퓰리처상 수상작에, 버락 오바마가 추천했다는 것도 책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윌리엄 피네건이 자신의 인생을, 서핑과 함께한 그의 인생을, 서핑을 중심으로 담담히 써내려간 책이다. 서핑이라고는 파도타기라는 단어의 뜻 정도만 알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었던 문장도 많았고 머릿 속에 제대로 된 그림을 떠올릴 수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서핑은 스크린에서 잠깐 볼 때처럼 쉬이 멋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결정이 필요했다. 우선 좋은 파도를 찾아야 한다. 좋은 파도는 황금빛 해변에 있기 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의 절벽 밑에, 무인도에, 가시 같은 산호밭 너머에 있을 확률이 높다. 좋은 파도를 찾은 뒤에는 그 파도로 들어갈 길과 파도를 탄 후 빠져나올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을 잘못 든다면 그걸로 끝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람, 바닷속 보이지 않는 암초, 산호, 그리고 미지의 변수가 그날의 파도를 결정한다. 그러니 끊임없이 공부하고 예측하고 틀리고, 다시 시도할 수밖에 없다.
바다에 들어간 뒤에 볼 수 있는 것은 눈앞의 파도 밖에 없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 다음 파도를 볼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그저 눈앞의 파도를 탈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한다. 파도를 타기로 결정한 후에는 파도를 느끼며 내 몸을 그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짧은 환희와 공포를 뒤로하면, 살아서 나올 길을 바다 한가운데에서 찾는다. 그리고 나서는 언 몸을 잠시 녹이고, 주린 배를 조금 채우고 다시 다음 파도를 찾아 바다로 향한다.
서핑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다. 바다로 들어갈 지, 이 파도를 잡을 지,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 팔을 한 번더 휘저을 지 정도이다. 바람도, 날씨도, 장소도, 시간도, 내 컨디션도, 심지어 살아서 돌아갈 지도 나는 결정할 수 없다. 다시 바다를 향할 지는 결정할 수 있다.
서핑이라는 단어를 인생이라는 단어로 읽었다. 그 얼마 안되는 결정들이 인생을 결정한다. 날씨를, 바람을, 결정할 수 없는 주어진 것들을 결정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다른 사람이 파도를 타는 것만을 부러워하며 내 결정을 뒤로 미루기 쉽다. 심지어 결정할 것들이 있는 지 조차 잊기 쉽다.
내 인생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 없다는 사실은, 그 얼마 없는 결정들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섭다. 그보다 인생을 잘 결정하고 싶다. 무섭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최선을 다해 바다로 향하고 싶다. 얼마 되지 않는 결정들을 더 늦기 전에 더 많이 더 열심히 더 즐겁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