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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해진 건 컴퓨터지 내가 아니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두말할 여지가 없다. 손가락을 몇번 움직이면, 토마토 파스타에 쓸 토마토 통조림이 내일 아침 우리집 문 앞에 도착한다. 클릭 몇 번으로는 한번도 가본적 없는 나라에 회사를 세울 수도 있다. 인간이 기계를 상대로 바둑을 이기는 일은 앞으로 영원히 없을 것이고, 나는 언제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 뿐인가, 우리는 모두 주머니에 엄청난 성능을 가진 컴퓨터를 하나씩 갖고 다닌다. 스마트폰은 아폴로 11호를 달로 인도했던 컴퓨터보다 수백만 배나 좋은 계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기기는 작아지면서 화면은 커지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이제는 접히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진화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한 건 진화론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너무 최근의 일이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세대 간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특정한 유전적 형질이 선택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는 이제 겨우 500년이고, 트랜지스터는 아직 100년도 채 못된 발명품이다. 딥러닝은 활성화 된 지 이제 갓 10년을 넘겼고...
기술의 발전과 달리 생물학적인 인간의 능력은 진화하지 못했다. 돌로 만든 바퀴 대신 엄청난 계산 능력을 가진 스마트폰이 주어졌지만, 인간은 여전히 일만년 전의 그 인간이다. 가장 논리적이라는 과학계의 사람들도 인지 편향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컴퓨터와는 달리, 인간은 동시에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소크라테스에게, 제레미 벤담에게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묻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감동한다.

플라톤은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작년에 플라톤의 향연을 읽었다(2019년에 읽은 책들). 나도 같은 생물 종인데, 플라톤은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그러니 온갖 서비스도 없었을 시대이니 심심했을 것도 같다. 아마 먹고, 자고, 읽고, 질문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운동하고, 포도주를 마시고, 사람들을 만났을 테다. 이외에 뭐가 중요한가?
나는 페이스북에, 트위터에, 인스타그램에, 카카오톡에, 그리고 유튜브에 시간을 쓴다. 각종 알림은 5분마다 한번씩 나를 다른 서비스로 인도하고, 브라우저의 탭 수는 늘어날 뿐 줄어들지 않는다. 좋아요를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운동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겨우 먹고 근근이 잠든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왜 하지 않는가?

똑똑하려면 바쁘지 않아야 하고, 이건 전쟁이다

인간은 불을 발견한 그 때부터 스마트폰 알림을 받는 지금까지도, 아직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발전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사고하는 힘 덕이라고 나는 믿는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체계를 만들었다. 생물학적인 인간은 진화하지 않았지만, 시스템은 발전했다.
생각해야 한다. 그러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읽음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만날 수 있고, 씀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운동해야 더 잘, 오래 할 수 있다. 사람들과 이를 나누어 발전시켜야 한다. 잘 먹고 푹 자면 이 모든 것들을 더욱 잘 할 수 있다.
이 외에 무엇이 중요한가?
현대 사회에서 이것들을 잘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똑똑하다는 것은, 스스로와의 전쟁을 의미한다. 하루 3시간을 쓰고, 60번을 확인하는 스마트폰을 멀리해야 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을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멀티태스킹을 거부해야 한다. 잠잘 시간을 확보하고, 잘 잠들기 위한 루틴을 유지해야 한다. 2~4끼를 충분히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읽고, 쓰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바쁘다. 8시간을 자고, 4시간을 먹고 쉰다고 가정하면,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하루는 12시간이다. 그중 25%인 3시간을 스마트폰에 쓰고 있으니, 스마트폰 이외에도 여러 distraction 을 생각하면 바쁜 것이 당연하다. 플라톤보다 적어도 25% 는 바쁘겠지. 그런데, 정말 바쁜가?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무엇을 하는 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 지가 결정한다. 똑똑해진 건 컴퓨터지 내가 아니다.
이 짧은 글을 읽는 동안 우리는 몇 번이나 방해받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