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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우리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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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우리의 존재를 모른다

서비스를 만들어 팔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이기도 하고, 반대로 또 가장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잠재적인) 고객은 우리의 존재를 전혀 모른다. 세상에는 수많은 서비스가 있고, 생기고 있으며, 내일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아주 작은 서비스이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더욱이 알 방법이 없다. 뭐랄까,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식의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이 당연함이 꽤 힘들 때가 있다.
수없이 많은 잠재 고객이 우리를 모른다는 이 당연함은, 적응이 잘 안된다. 특정한 집단에서 존재감이 생길 때는 더욱 그렇다. 한국 노션 사용자 모임 페북 그룹에는 Oopy 라는 서비스를 아는 사람이 꽤나 많다.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커뮤니티들을 자주 확인하게 되는데, 심심치 않게 Oopy 가 언급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뿌듯하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고객 수를 보고 있으면, 역시나 뿌듯하다.
이 뿌듯함과 약간의 자아도취가 대부분의 고객이 우리를 모른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게 한다. 서로 섞이기 힘든 종류의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뿌듯함과 똥줄탐을 같이 즐기기는 쉽지 않다. 뿌듯함에 빠져 고객이 우리를 모른다는 사실을 잊으려고 하면 서비스는 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쉼없이 불안에 빠져 있어서는,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
고객이 우리를 모른다는 당연한 사실처럼, 서비스를 만들어 팔면서 배우는 대부분의 것들은 당연한 것들이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고객들이 있기는 하다

얼마 전 유료 고객이 천명을 넘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Oopy 를 아는 고객들이 있기는 하다는 뜻이다. 이전 글(MVP 에서 배운 것들)에서 예고했던, 누가 Oopy 를 잘 쓰고 있는 가에 대한 내용이다.
최근 한달 트래픽을 기준으로 하면, Oopy 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곳들은 다음과 같다.
서비스의 극초기부터 사용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 Oopy 를 잘 활용하고 있는 곳들은 다음과 같다.
이 외에도 브랜딩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들, 최소한의 리소스로 빠르게 랜딩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는 곳들도 모두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이다. 한번씩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회사들이 꽤 많다. 고객은 우리의 존재를 모른다는 사실은 여기서도 모순을 만든다.

아이러니

Oopy 를 만들면서 머릿속에 그린 고객은,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소한의 효과를 내야 하는 작은 고객이었다. 마치 우리와 같은 고객이었고, 그래서 Oopy 서비스로 Oopy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그런 고객들이 많기를 기대했다. 간단한 웹페이지는 필요하지만 개발 인력은 부족하거나 없는 그런 고객.
그런데 실제로 서비스를 가장 잘 사용하는 고객은 카카오T, 클래스팅 같은 상대적으로 큰 곳들이다. 개발 인력은 어디서나 부족하고, 서비스를 잘 사용해주는 고객이 있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우리를 모르는 고객들이 대부분인데, 와중에 우리를 아는 고객은 왜 큰 곳들일까가 궁금하다, 그냥.

뭐든, 시간이 걸린다

서비스를 만들면서 머릿속에 그린 고객과 실제 고객은 항상 다르다. 서비스의 가치를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고객과도 다르다. 사실 머릿속에 뭘 그리고 있건, 실제와는 다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위에 있는 아이러니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서비스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그 사실을 잘 전달할 지에 대한 끝없는 똥줄탐과, 선구자들이 서비스를 잘 사용해주고 있다는 뿌듯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버텨야 한다는 뜻이다. 둘 다 없으면 그만해야하고.

다음 이야기

다음에는 처음으로 투자(혹은 인수?)제안 받은 이야기를 써보면 재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