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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선미님의 추천으로 알게 된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비히스패닉계 중장년 백인’들의 ‘특별한 죽음’에 대해 상세히 파헤친다.
종종 잊고 살지만, 사람은 모두 죽는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특별한 사실이 아니다. 의학 지식, 기술 그리고 사회 인프라 -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 이 발전함에 따라 죽음은 조금씩 먼 일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식은 위에서 얘기한 백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요즘 같이 모든 것이 발전하는 시기에, 더 많이 죽는다.
절망은 사람을 죽인다. 화성에 정착할 계획을 세우고 블럭체인이 미래라는 세상이지만, 인간은 아직 수만년 전의 인간과 유전적으로 동일하다. 인간이 만든 세상이 발전한 만큼 인간 자체가 발전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강하지만 동시에 나약하고, 불안하고, 외롭다. 죽지 않을 만큼 먹고 입고 잘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안 좋아진 내 현재와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할 수 없는 내 미래는 인간을 절망하게 한다. 절망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런 인간을 죽음으로 안내한다. 비단 미국의 특정 백인들만의 문제는 아닐 테다.
아버지는 만 57세에 돌아가셨다. 직접적 원인은 알콜중독이었지만 이제와 가만히 돌아보면, 절망사였다. 어머니와 이혼한 뒤 아버지는 하루하루 고독에 빠졌다. 멀리서 학교를 다니는 아들은 한달에 한두번 보는 사이였고, 친구도, 종교도 없었다. 하루 12시간이 넘게 택시를 운행하고 돌아와서 밥을 먹고, 티비를 보고, 그렇게 이틀을 일하고 쉬는 날에는 술을 마시던 일상이 깨지자, 아버지의 삶도 깨졌다.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차를 팔았고, 그렇게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이 아버지를 덮쳤다. 덮쳤던 것 같다. 15년이 다 되어서야 술보다 더 깊은 문제가 있었음을 추측한다.
자라면서 부모와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집을 가능한 빨리 떠나고 싶어 기숙 학교만을 목표로 했고,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아이와의 시간에 가능한 모든 노력을 하고, 좋은 아빠라는 꿈을 갖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접한 책을 읽고 급히 쏟아내는 글이 더 깊은 나를 발견하는 것이 참 신기하다.
너무나 빨리 달라지는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절망의 단초일 수 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은 양가적이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절망의 단초를 없앨 수 있는 일을 하는 아빠가 될 수 있다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것은 이제 확실히 알겠다.